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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2. 4. 12:18

한민국에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당선이 되고

2013년 많은 것들이 변화가 되겠지요?

 

세상이 참으로 악해지고, 수많은 범죄가 발생하는 요즘.

무엇보다 평화가 필요한 시대인것 같습니다.

 

이제 전쟁이라는 것이 일어나면, 너죽고 나죽고. 모두가 죽는 이때.

과학기술은 점점 발달해 가면서 인간의 수명도 늘어가지만,

그만큼 인간의 존엄성, 생명에 대한 생각들도 많이 가벼워 지는 것 같습니다.

 

평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죠.

평화하면 생각나는 *노벨평화상.

 

그중에 아웅산 수치 여사가 우리나라에 방문해서 참으로 뜻깊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미얀마의 정치 운동가 입니다.

 

 

참. 연약해 보이는 여성이 어떻게 그러한 일들을 했는지.

존경스럽습니다.

 

민주화 운동으로 14년간이나 군부정권에

가택연금을 받으며 자유를 박탈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위협적인 인물이였죠.

 

 

 

 

[약간의 설명]

 

아웅 산 수 치에게 있어서 1988년은 운명의 해였다. 15살 때부터 시작된 30여 년에 이르는 외국 생활 동안 그녀는 학자로서,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운명의 1988년 어머니 킨 치 여사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영국에 머물던 아웅 산 수 치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해 8월 버마에서는 8888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버마의 국민들은 건국의 아버지 아웅 산의 딸 아웅 산 수 치가 자신들을 위해 행동해주기를 소망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그녀의 운명이자 의무였다. 그저 ‘평범한 여자’의 인생을 살고 싶었을지도 모를 40대 중반의 아웅 산 수 치는 안온했던 삶을 뒤로 한 채 가시밭길 같은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

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웅 산 수 치는 버마 국민에게 희망의 이름이자 민주화의 상징이 되었다.

 

(중략)

 

선거의 승리도 좌절도 아웅 산 수 치는 가택연금 된 상태에서 맞았다. 그녀는 단식도 하였고 국제적인 청원도 하였지만 버마 군부는 아웅 산 수 치를 가둬 둔 채 총칼을 휘두르며 요지부동 지금까지 버마를 통치 하고 있다. 그 사이 아웅 산 수 치는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버마 정부는 아웅 산 수 치의 가택 연금을 풀어주지 않았다. 결국 이 시상식에는 그녀의 남편과 아들이 아웅 산 수 치의 사진을 들고 대신 참석하였다. 

 

1995년에는 국제적 압력에 못이긴 버마 정부가 아웅 산 수 치를 잠깐 가택연금에서 풀어주기도 하였다. 그녀는 이 시기 동안 여전히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운동을 계속하였다. 1999년에는 남편 마이클 에어리스가 사망하였지만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못했다. 외국으로 나가면 군부가 그녀를 버마 땅으로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을 염려해서였다. 결국 2000년에 버마 군사정권은 아웅 산 수 치를 다시 가택연금하고 양곤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였다. 2002년 국제 연합특사가 버마에 대한 경제 제재를 일부 풀어주는 조건으로 아웅 산 수 치를 가택연금에서 풀려나게 했지만 이듬해인 2003년 군사정권은 그녀를 또 집에 가두어 버렸다. 2008년에는 5년 시한이던 가택연금을 1년 더 연장하더니 최근에는 그녀의 집에 낯선 미국인이 잠입한 사건을 꼬투리 잡아 그녀를 인세인 교도소로 옮겨 구금하고 있다. 그녀의 죄목은 ‘공중보안법’ 위반이고 군부의 시나리오에 의하면 5년 형을 내릴 것이라고 한다.

 

세계는 아웅 산 수 치에 대한 버마 당국의 처사를 맹 비난 하고 민주화를 향한 버마 국민들의 소망을 무시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버마 정부에 대해 경제 제재까지 가하고 있지만, 버마 군사정권은 아직까지도 묵묵부답,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게 위해 오늘도 총칼로 무장한 채 버마를 통치하고 있다.

*버마=미얀마

 

 

 

(출처는 네이버)

신천지의 이만희 총회장도 만났다고 합니다.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은. 연관검색어에 평화의 사자라고 같이 뜨네요.

어째든 그 누구를 막론하고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의 평화의 상징이 된

넬슨만델라.

 

 

 

 

(약간의 설명)

 

만델라는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용사이면서 용서와 화해의 정치인이다.

그는 언제부터 정치적인 투쟁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그는 말한다. “내가 언제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언제부터 자유를 위한 투쟁에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 남아프리카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들의 인식 여부에 상관없이 정치화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흑인에게 자유를 위한 투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라고 해야 한다. 거대한 정권과 투쟁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하다. 만델라는 나중에 자신이 의장이 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조직원으로 평생 활동했다.

(중략)

 

무장 투쟁사에게 주어진 노벨평화상 

만델라는 1993년 드 클레르크 당시 남아공 대통령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남아프리카인으로 만델라는 2차 세계대전 후에 세 번째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 만델라 이전에도 남아공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엘버트 루툴리 추장이 1960년에, 데스먼트 투투 주교가 1984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만델라는 무장투쟁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노벨평화상을 전혀 기대하기 않았다고 했다. 이후 그는 남아공의 대통령이 되었고 흑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투표를 하고 인종차별주의는 철폐되었다. 우리는 당연히 '흑인들이 핍박에 대한 보복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만델라와 아프리카 민족회의는 달랐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구성해서 과거의 인권침해 범죄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그들은 사면했다. 이러한 문장이 그들의 심장에서 튀어나왔다. “용서한다.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에 “용서 못한다. 너희들도 한번 죽어봐라” 가 되었더라면 남아공은 내전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만델라는 진정한 자유를 원했고, 자신이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 과거의 인권유린에 대한 사면을 받은 백인들 역시 죄책감에 시달렸다.

사면을 받은 한 백인은 “흑인들이 나를 천만번 용서하고,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이 천만번 나를 용서한다 해도 나는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나의 머리 속에 나의 양심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절규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폭파시켜 달라고 애원했다. ‘머릿속에 기억 속에 지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면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가 얼마나 잔혹했는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넬슨 만델라의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우리 대한민국의 이만희 총회장이 다녀왔다고 합니다.

평화의 사자로서요.

 

종교를 떠나서. 참으로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 평화에 관련된 일을 많이 하고 있군요..)

 

 

 

 

 

 기오르기스 대통령은

하늘의 빛과 비와 공기와 같이 서로 도와주며 하나가 되자는

만남의 봉사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국경, 인종, 종교의 벽을 허물고 세계가 하나 돼

평화·광복을 위해 한가족이 되자는

이 총회장의 세계평화 메시지에 감동을 받고 동참의사를 밝혔다.

이 총회장은 “만남의 봉사 활동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함께할 뜻을 보이고 있다.

참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대통령도 대한민국의 통일에 힘써 주시겠다고 하니

정말 감사하고 큰 힘이 된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기오르기스 대통령은 “만남이 펼치는 평화운동과 남북통일을 적극 지지한다”며

“에티오피아가 남북한의 평화 유지와 통일 실현에 대해 공유하고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노벨 평화상을 받으신

김대중 전대통령.

 

동아시아와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향상에 기여한 업적과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

 

 

 

2000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일.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40여 년에 걸친 긴 투쟁 역정과 6·15 남북 공동선언을 이끌어내어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한 공로를 국제사회에서 인정, 노벨 평화상 부문에서 세계 81번째로 수상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상 시상식 연설 등을 통해 국제사회가 북한의 개혁·개방에 좀더 많이 지원해줄 것을 당부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더욱 높여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평가된다.

 

 

 

 

 

 

 

그 외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받았죠.

수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은 참으로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의 상징 비둘기.

 

도대체. 평화는 무엇으로 이룰 수 있을까요?

요즘에 평화의 사자로 뛰고 있는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은

하늘문화로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진실로.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면,

 

무엇이든 적극 협조하는 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우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어서 빨리 통일이 되긴 해야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