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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스티브잡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13. 04:23

 

IT사회에서 가장 우리에게 편리하도록 제공해주고 새로운 제품을 발명하고 창조해내신 그는 바로 스티브잡스이죠.

스티브잡스는 최초로 개인용컴퓨터,스마트폰,태블릿PC등을 개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성공하기에 많은어려움과 실패가 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노력하여 큰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오늘에 포스팅은 그에 일생과 업적에대해서 알아보도록하겠습니다.


"애플의창립자이며 세계최초의 개인용컴퓨터개뱔자"
스티브잡스 (Steve Jobs)
1955년 2월 24일~011년 10월 5일

1.스티브잡스
스티븐 폴 "스티브" 잡스(영어: Steven Paul "Steve" Jobs, 1955년 2월 24일 ~ 2011년 10월 5일)는 미국의 기업인으로, 애플의 창립자다.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애플 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했다. 또한, GUI와 마우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다보고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에서 이 기술을 도입하였다.1985년 경영분쟁에 의해 애플에서 나온 이후 NeXT 컴퓨터를 창업하여 새로운 개념의 운영 체제를 개발했다. 1996년 애플이 NeXT를 인수하게 되면서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고 1997년에는 임시 CEO로 애플을 다시 이끌게 되었으며 이후 다시금 애플을 혁신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게 이끌었다.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하여 음악 산업 전체를 뒤바꾸어 놓았다. 또한, 2007년 아이폰 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을 바꾸어 놓았고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함으로써 포스트PC 시대를 열었다.
스티브 잡스는 《인크레더블》과 《토이 스토리》 등을 제작한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소유주이자CEO였다. 월트 디즈니 회사는 최근 74억 달러어치의 자사 주식으로 이 회사를 구입하였다. 2006년 6월 이 거래가 완료되어 잡스는 이 거래를 통해 디즈니 지분의 7%를 소유한, 최대의 개인 주주이자 디즈니 이사회의 이사가 되었다. 한편 그는 2004년 무렵부터 췌장암으로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그의 악화된 건강상태로 인하여 2011년 8월 24일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최고경영책임자(CEO)를 사임하고 최고운영책임자(COO)인 팀 쿡이 새로운 CEO를 맡는다고 밝혔다. 잡스는 CEO직에서 물러나지만 이사회 의장직은 유지키로 했으나, 건강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사임 2개월도 지나지 않은 2011년 10월 5일에 5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출생배경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조앤 시블과 압둘파타 존 잔달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시블의 아버지의 반대로 폴 잡스와 클라라 헤고피언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잡스에게 그가 생물학적 부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큰 몫을 하였다. 1980년대 애플 II 개발 그룹의 책임자이자 후에 최고 업무 집행 책임자로서 잡스의 오랜 동료인 델 요캄은 그의 가정 환경과 성격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무엇을 만들든 완전히 통제하려 드는 그의 집착은 출생 직후 버려졌다는 사실과 그의 성격에서 직접적으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잡스는 잡스 부부가 ‘양부모’라고 칭해지거나 진짜 부모가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되면 날카롭게 반응했다. 반면에 친부모에 대한 언급을 할 때에는 퉁명스러웠다. 잡스는 그의 양부모에 대해서 “그분들은 1000퍼센트 제 부모님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 반면에 친부모에 대해서는 “그들은 나의 정자와 난자 은행이지요. 무정한 게 아니라 사실이 그래요. 정자 은행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4.양부모
스티브 잡스의 양아버지인 폴 라인홀트 잡스는 위스콘신 주 저먼타운에서 자랐으며, 점잖고 얌전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중퇴 후에는 기계공으로 일하였으며, 열아홉살 때에는 해안경비대에 입대하여 기계공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기도 했다. 클라라 헤고피언은 스티브 잡스의 양어머니로, 뉴저지 주에서 아르메니아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으며 상냥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비밀스러운 과거가 있었는데, 폴 잡스를 만나기 전에 결혼을 하였으나 남편이 전쟁에 나가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폴 잡스와 클라라 헤고피언은 폴 잡스가 해안경비대에서 제대하면서 동료들과 한 내기로 인해 만나게 되었고, 1946년 3월 약혼을 하였다. 그들은 위스콘신에 있는 잡스의 부모 집에서 같이 살다가 인디애나 주로 집을 옮겼고, 그 후 클라라 잡스의 설득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선셋디트릭트로 옮겨 생활하였다. 잡스 부부는 행복한 생활을 하였지만, 클라라 잡스가 아이를 가질 수 없어 1955년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아이에게 스티븐 폴 잡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잡스 부부는 잡스가 어릴 적에 입양 사실을 밝혔으며, 혼란스러워하는 잡스를 많이 보듬어 주었다.
 
5.잡스의 어린시절
잡스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자주 빼 먹는 비행 청소년이자 사고뭉치였다. 잡스의 4학년 담임이었던 이모젠 힐 선생님이 돈으로 구슬리는 것으로 겨우 학교생활을 하던 그는 히스키트라는 아마추어 전자공학 키트를 얻는 순간 인생의 전환점에 도착하게 된다. 그는 이 키트 덕분에 어려서부터 전자제품의 작동원리를 익히게 되었다. 잡스는 캘리포니아 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쿠퍼티노 중학교와 홈스테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고등학교 시절 동안 그는 팔로 알토의 휴렛 패커드사에서 방과후 수업을 들었으며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휴렛 패커드사에 여름 동안 임시 채용되기도 했다. 1972년 리드 대학교에 다니다 1학기만 수강한 후 중퇴하였으며, 1974년에는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아타리에서 일을 하였다. 후에 워즈니악의 권고로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 나가게 된다.
 
6.업적
창업 이후 잡스는 홈브루 컴퓨터 클럽이라는 이름의 클럽에서 스티브 워즈니악이 개발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1을 공개했다. 애플1은 모니터도 없고 디자인도 투박했으나 의외로 큰 반응을 보이며 판매에 성공했고 그에 힘입어 1980년에는 주식을 공개했다. 1984년에는 IBM에 대항하여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탑재한 애플 리사를 내놓았다. 그러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너무 비싸서 실패하였고, 또 매킨토시 프로젝트가 경쟁사 IBM에 비해 가격이 비싸기도 했다. 그리고 응용 소프트웨어 또한 부족하자 또 다시 실패하게 되었다. 이것은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PC를 사용하게 된 큰 사건이었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에 의해 1985년에 애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애플을 떠난 뒤 넥스트사를 세워 세계 최초의 객체 지향 운영 체제인 넥스트 스텝을 개발하였고 1986년 이혼 문제 때문에 자금이 필요했던 조지 루카스 감독의 컴퓨터 그래픽 회사를 인수하였다. 잡스는 회사 이름을 픽사로 바꾸고 10년 간 6천만 달러를 투자하여 할리우드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로 키워냈다. 픽사는 여러 번 단편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오스카상을 받았으며 그 뒤로 최초의 장편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는 디즈니사에 합병되었다. 그 후1997년 넥스트는 애플에 인수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그는 애플로 돌아왔다. 그 해 7월 애플의 최고 경영자로 복귀하였으며, 1997년 10억 달러의 적자를 낸 애플을 한 해만에 4억 달러에 가까운 흑자를 내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스티브 잡스의 업적과 영향력 때문에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일부 그의 팬들은 예수를 빗대어 추켜세우기도 했다.
애플은 2011년 8월 24일 성명을 내고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가 CEO직을 즉각 사임한다고 밝혔다. 애플은 팀 쿡 최고운영책임자(COO)가 후임을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제품

애플 Ⅰ (AppleⅠ) (1976)

애플 Ⅱ (Apple Ⅱ) (1977)

애플 Ⅲ (Apple Ⅲ) (1980)

 

애플 리사 (Apple Lisa) (1983)

매킨토시 128k (Macintosh 128k) (1984)

매킨토시 II (Macintosh II) (1987)

매킨토시 포터블 (Macintosh Portable) (1989)

매킨토시 클래식 (Macintosh Classic) (1990)

파워북 100 (PowerBook) (1991)

뉴턴 메시지 패드 (Newton Message Pad) (1993)

아이맥 (iMac) (1998)

아이팟 (iPod) (2001)

파워 매킨토시 G5 (Power Macintosh G5) (2003)

아이팟 나노 (iPod nano) (2005)

 

맥 미니 (Mac mini) (2005)

맥북 (MacBook) (2006)

아이폰 (iPhone) (2007)

맥북에어 (MacBook Air) (2008)

아이폰3GS (iPhone 3GS) (2009)

아이패드 (iPad) (2010)

아이폰4 (iPhone 4) (2010)

 

아이패드2 (iPad 2) (2011)

아이폰4S (iPhone 4S) (2011)

뉴아이패드 (The New iPad) (2012)

 

맥북프로 레티나 (MacBook Pro Retina) (2012)

아이폰5 (iPhone 5) (2012)

7.천재에 죽음  

2000년대 들어서 스티브 잡스의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2004년에 췌장암 수술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고 계속 악화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가운데 애플 측은 주가하락 등을 이유로 건강 이상설을 부인해왔다. 그러나 2009년 6월 간 이식 수술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호르몬 이상으로 체중 또한 지속적으로 줄어 2009년부터 호르몬 치료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건강 이상설에 따라서 주가가 무려 6%씩이나 등락하는 등 그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나, 애플이 너무 스티브 잡스에만 기대고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2011년 1월에는 스티브 잡스의 건강이 다시 악화되어 병가를 냈다. 이에 따라 애플의 주가는 6.5% 급락했다. 스티브 잡스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나오던 가운데 잡스는 백악관에서 만찬을 가졌고 사진도 공개되어 화제를 모았다. 이후 파파라치가 찍은 스티브 잡스의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이전보다 훨씬 수척해진 모습이어서 췌장암 악화로 인한 6주 시한부설이 사실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1년 3월, 아이패드2를 발표하기 위해서 스티브 잡스가 모습을 나타냈다. 잡스는 언론에 보도된것 보다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 경영에 문제가 없음을 과시했으나, 이후 다시 병세가 급속히 악화되어 같은 해 8월 애플 CEO직을 사임하고, 췌장암 투병 끝에 결국 2011년 10월 5일 향년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은 다음의 애플 공식성명에 의해 알려졌다.

 

"그가 세상에 없지만 많은 제품과 우리에 생활방식을 스마트한 된것도 그사람 때문인것도같다.

그러면서 그사람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하다는것을 깨달아야할것같다." 

 

출처:위키백과

글 / IT동아 강일용 ''애플Ⅰ'부터 '아이폰5'까지... 애플 제품의 역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