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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동영 1985, "고문이 애국행위인 줄 알았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2. 16. 16:22

 
 

남동영 1985 - "고문이 애국행위인 줄 알았다"

“고문자체가 잘못”… 자서전서는 ‘시대탓·애국’
“영화 ‘남영동’ 고문기술 현실과 달라” 반박도

군사독재 시절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74) 씨는 14일 “과거를 회개하며, (고문) 행위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자서전에서는 “그 당시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고 표현하는 등 변명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씨는 서문에 “‘남영동 1985’ 영화까지 제작·상영하면서 매도하는 것을 바라보며 한 시대는 사상범으로 옥살이하고 한 시대는 민주화 인사로 탈바꿈하며 민주화 보상금까지 받는 행운을 바라보면서 시대를 잘 만나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서술했다.

이 씨는 자서전 내용 중 사죄한다는 말이 없다는 지적에 “전반적으로 다 회개를 하는 것이지 한 건 한 건에 대해서 말하기는…”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또한 영화 ‘남영동 1985’의 내용이 실제와는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 씨는 “물고문은 주전자로 조금씩 물을 부어가며 하는 건데 영화에서는 샤워기 끝 부분을 빼버리고 호스 채로 물을 붓더라”면서 “젓가락으로 맞으나 몽둥이로 맞으나 맞은 건 마찬가지 아니겠나. 저도 그걸 보면서 제가 그렇게 악질이었나 하고 울었다”고 밝혔다.

이어 “전기고문은 AA 배터리를 사용하되 (고문 대상자의) 눈을 가려 겁만 줘 자백을 받는 건데 영화에서는 자동차 배터리 같은 걸로 나왔다. 그건 처음 보는 물건”이라며 AA 배터리 한 개를 꺼내들기도 했다.

남동영 1985

줄거리
1985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전 국민의 숨소리까지 검열하는 군부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1985년 9월 4일, 민주화운동가 김종태는 가족들과 목욕탕을 다녀오던 길에 경찰에 연행된다. 예전부터 자주 경찰에 호출되었던 터라 큰 일은 없으리라 여겼던 그는 정체 모를 남자들의 손에 어딘가로 끌려간다. 눈이 가려진 채 도착한 곳은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 공안수사당국이 ‘빨갱이’를 축출해낸다는 명목으로 소위 ‘공사’를 하던 고문실이었다. 그날부터 김종태는 온갖 고문으로 좁고 어두운 시멘트 바닥을 뒹굴며 거짓 진술서를 강요 받는다.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잔혹한 고문을 일삼는 수사관들에게 굽히지 않고 진술을 거부하는 김종태. 하지만 ‘장의사’라 불리는 고문기술자 이두한이 등장하면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잔혹한 22일이 시작된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사라진 22일,지워져서는 안 될 기록이 펼쳐진다.

 

너무나 보고 싶었던 남영동 1985가 개봉되었다.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시대에 있었던 일..

 더욱 궁금하고 알고 싶은 부분이다.

왜 꼭 가혹한 고문이 필요했던 것이였나?

사람이 사람에게 준다는 그 고문의 끝은 알면 알수록 끔찍하고 잔혹하다.